햇빛 쏟아지던 날들
방콕 이야기 2. 왓포, 왓 쁘랏깨우, 왕궁 본문
제목을 적어보니 정말 많은 것을 한 하루였구나.
좀 나누어 적어야겠다.
여행 (실질적) 첫날의 컨셉은 랏따나꼬씬&톤부리 구경이었다.
일찍 일어나 호텔 수영장을 잠시 구경하고,
거리로 나서니 그제서야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랏따나꼬씬/방람푸 지역으로 가려면 운하보트를 이용하면 된다.
내가 처음에 알아본 것은 BTS 칫롬역-싸판탁신역으로 가서, 거기서 수상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거였는데
(이하 시가지 내 보트는 운하 보트, 짜오프라야 강 보트는 수상보트라고 쓰겠음)
그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다.
교통수단을 자세히 알아온 친구 덕분에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운하보트 선착장은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작은 다리 밑에서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오길래 저게 뭔가 했는데
뭔가 했던 거기가 선착장이었다.
보트를 타려면 순발력 있게 훌쩍 타야 하는데, 여차 하면 놓치기 쉽다.
보트에 올라타서 직원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요금을 내면 된다.
우리가 가려는 판파까지는 11바트였던 것 같다.
판파까지 가려면 빠뚜남에서 한번 갈아타야 했다.
나름 환승역이라 그런지 사람이 굉장히 많았고, 줄을 잘못 서면 배를 몇대건 놓치기 쉬웠다.
약간 앞쪽에 서있어야 잘 탈 수 있다.
운하보트를 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 멋있었다.
번쩍이는 고층빌딩과 대비되는 작은 집들. 빨래가 널려있는 풍경들
가면서 짐 톰슨하우스도 보았다.
운하보트에서는 물이 튀기 쉬운데, 그럴 때면 수동으로 천막을 쳐주면 된다.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게 되면 다시 올려야지.
방콕은 교통체증이 어마어마한 도시라는데, 운하보트를 이용하면 비교적 교통체증 없이 이동할 수 있다.
그것도 무지 저렴하게.
다만, 배차간격이나 이런 건 잘 모르겠다. 아. 너무 늦은 시간에는 이용 못한다는 단점이.
판파에 내렸는데 그땐 뭔가 뭔지 몰랐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봤더라면 바로 푸카오텅이 보였을텐데,
그 다음날에서야 여기가 거기구나! 깨닫고 신기해했다.
낯설고 어색한 길들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지는 순간..
배에서 내려서 거리로 나오면 툭툭/택시기사들이 여기저기서 말을 건다.
워낙에 뜨내기여행자를 노리는 사기꾼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우리에게 말을 건 사람들은 딱히 그래보이지는 않았고 다들 친절했다.
그리고 사실 뭐라고 하는지 잘 못알아들어서 그냥 오케이 땡큐 하고 넘겼는데,
이따가 왕궁 근처에서 비슷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고 아 이게 그 책에서만 보던 그 레파토리인가! 생각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왓포였는데, 아침을 먹지 못해서 방람푸에서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내가 가고 싶었던 왓 랏차낫다(결국 못감)가 보였다.
지도상으로 평면적으로만 보던 길을 내가 직접 걸으면서 익히니 재밌고 신기했다.
아마 다시 한 번 더 가게 되면 정말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방람푸의 이정표가 된다는 민주기념탑도 처음에는 아 저거구나! 하는 정도였지만
몇번 걸어보니 정말로 길이 익혀졌다. 비록 느리게 익히긴 했지만..
거리 곳곳에는 고양이들이 참 많았다.
그냥 길거리에도 많고, 유적지 안에도 많았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개도 많은데 대개 덩치가 크고 야생 냄새가 나는 개들이었다.
근데 다들 하나같이 죽은 것처럼 자고 있더라는... 상팔자.
부지런히 계획을 짜온 친구 덕분에 순조롭게 길을 찾았다.
9시 반이 좀 안 된 시간에 크루아 압손을 가려 했는데 아직 문을 안 열었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시장에서 먹을까 하다가 구경만 하고 카페에서 시간을 때웠다.
Baan Dinso라는 카페에서 라떼를 마셨는데, 처음에는 분유맛이 났지만 좀 섞어먹으니까 달달하고 맛있더라.
드디어 10시가 되어 크루아압손에 갔다. 문에는 10시반부터 영업한다고 써있던데, 이미 손님이 몇몇 있었다.
뿌빳퐁커리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메뉴를 하나 시켰다. (우리는 이걸 김치찌개라 불렀다.)
친구가 미리 알아온 건데, 여기서 뿌빳퐁커리랑 같이 가장 인기 많은 메뉴라고 했다.
정말 사람들이 포장해서 막 몇봉지씩 사가더라는..
뭔지는 모르겠는데 정말로 김치찌개 비슷한 맛이 났다. 조금 더 시큼한.
보기에는 떡볶이 같이 생겼는데, 씹어보면 야채라서 정말 김치찌개 같았다.
가장 기대했던 뿌빳퐁커리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말 밥반찬으로 딱이더라는. 커리 양념에, 양파, 고추 등 자극적인 건 다 들어가있지만
그래서 우리나라 음식이랑 별로 이질감이 안 느껴졌다.
작년에 캄보디아, 베트남 갔을 때는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생했는데 태국은 정말 하나같이 내 입맛에 맞더라.
여행가이드책에서 보고 '고수는 빼고 주세요'라는 말도 외워서 갔는데,
막상 가보니 주문할 때 그런 말 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음식도 모두 거부감 없이 먹었다.
(단, 수끼 먹을 때는 정체불명의 풀떼기가 고수로 추정되긴 했었다 ㅋ)
나중에 음식 특집 글 하나 올려야겠다!
밥을 배불리 먹고 왓포로 향했다. 골목 골목 길이 하나같이 재미있고 좋았다.
큰길가로 나오니 본격적인 햇볕 공습이 시작되었다 ㅋ
왓포 앞에서 밀짚모자를 하나 샀다. 복장 제한은 그리 엄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릎 조금 위로 올라오는 원피스를 입었는데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와불상이 있는 건물로 들어갈 때는, 신발이랑 모자를 벗어야 했다.
민소매 옷을 입은 사람한테는 가운을 빌려준다.
왓포는 구석구석 사소한 곳들이 예쁘고 좋았다.
유적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 (공부를 제대로 안 한거지) 뭐라 길게 말은 못하겠지만
사실 사원은 그냥 의례적으로 가봐야겠다 하고 일정에 넣은 건데
정말로 아름답고 멋지더라. 기대보다 훨씬 더.
하늘을 찌를 듯 꼬불꼬불 솟아있는 탑과 다채로운 문양들이 아름다웠다.
시간이 나면 왓포 발맛사지를 받아볼까 했는데 여유가 없어서 패스했다.
다음에는 가서 왓포마사지스쿨에서 타이마사지를 배워보고 싶다.
왕궁으로 이동하는 길에 작은 시장에서 망고를 사먹었다.
평소에 망고 먹을 일도 없고, 망고주스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 별 기대를 안했는데
정말 존맛 꿀맛이었다. 가격도 20바트 밖에 안하고.
근데 이 시장이 막다른 골목인지 알았는데 알고보니 배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퍼즐을 맞추는 기분.
왕궁 근처에는 오늘 왕궁이 문을 닫았으니 내가 좋은 데를 소개시켜주겠다며 보석상점으로 유인하는
사기꾼들이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안내방송에서 왕궁은 내내 문을 연다고 나오더라.
왕궁은 복장제한이 좀 엄격했다. 입구에 있는 대여점에서 보증금을 내고 긴 치마를 빌려입었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울려서 기분이 좋았다. 보폭이 좀 좁아지긴 했지만ㅋ
매표소에서 티켓을 샀는데, 여긴 500바트로 좀 비싸다.
왕궁, 왓쁘라깨우 뿐만 아니라 위만멕궁전이랑 동전박물관도 들어갈 수 있다는데 일정상 패스했다.
다음에는 위만멕궁전도 가보고 싶다.
기념품샵에서 엽서를 몇 장 사고 왓쁘라깨우(에메랄드사원)로 들어갔다.
역시나 건물들이 너무 멋있어서 내내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앙코르와트 때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건물양식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더라면
더욱 더 풍요롭게 구경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아쉽고 부끄러웠다.
덥고 지쳐서 그늘에서 몇번 쉬곤 했다.
왕궁을 돌아다닐땐 생수와 음료수가 필수다.
배낭에 내내 생수 몇병을 가지고 다니느라 고생했을 친구에게 새삼 고맙고 미안하네.
왓쁘라깨우를 지나 왕궁으로 넘어갔는데, 지치기도 했고 시간도 촉박해서 빠르게 보았다.
왜 수많은 블로그 후기들에서 '왕궁은 빠르게 보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ㅎ
왕궁에서 나오자마자 말로만 듣던 수박주스를 사먹었다. 내입에는 정말 맛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걸 팔면 진짜 흥할 것 같은데 좀처럼 찾기 힘든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
근처에 있는 락 무앙과 왓 마하탓은 패스했다. 부적거리와 타마쌋 대학교 구경도 패스.
방람푸 쪽으로 가는 길에 타마쌋 대학교, 국립박물관, 국립극장 등이 쭈루룩 있더라.
언젠가 길게 머물게 되면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이쏘이로 향했다.
한국인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아서인지 간판도 한글로 써있었다.
허름하고 작은 식당이다. 별로 청결하거나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치만 저렴한 가격에 맛있게 식사하기 좋은 식당이다. (60바트라니!!)
갈비국수는 한국인 입맛에 맞지만 좀 느끼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어서 크게 기대는 안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정말정말 맛있었다. 밥 말아먹고 싶더라는.
싱하 한병과 함께, 훌륭한 식사를 마쳤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책에서 태국어로 맛있다는 말을 찾아서 직원한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넘어가부렀다. 소심소심.
나이쏘이는 4시엔가 문을 닫았던 것 같다. 저녁식사는 안됨.
그다음 배를 타러 갔다. 낯설었던 이 길을, 밤에도 걷고
그다음날 밤에도 걷고, 여러번 걸으니 이어졌다. 나는 이런게 왜 이렇게 감동적일까.!
마구마구 쓰다보니 글이 점점 두서없어진다. 이쯤에서 끊어야겠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오전에 왓포+왓쁘라깨우/왕궁+a를 다보고 2시경에 톤부리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실제로는 3시 반쯤 가게 되었다.
많은 일정을 패스했는데도 말이다. 조금은 무리한 계획이었던 거다.
못 본 곳이 많아서 아쉽지만, 몇번이고 가고 싶은 방콕이기에. 다음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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