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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쏟아지던 날들
간(肝)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우에 습한 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山中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둘러리를 빙빙 돌며 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나는 야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다시는 龍宮의 誘惑에 안떨어진다. 푸로메디어쓰 불상한 푸로메디어쓰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끝없이 沈澱하는 푸로메디어쓰
불꽃놀이를 하는가 바람이 많이 불던 밤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무엇이든 묻고 싶은 밤. 뭐라도 묻지 않으면 누군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해올 것만 같은- 그날은 그런 바람이 불던 밤이었다. / 여름.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달빛. 그리고 두드러기 때문에 같이 놀게 된 무리가 있다. 모두 맨발이고, 모래를 밟을 때마다 전해오는 저릿함에 괜한 요의를 느낀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장되게 웃고, 서로의 호감을 사려는 어이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청춘. 배고픈 듯 활짝 벌어진 동공들이 반딧불처럼 모래사장 위를 날아다닌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순간일수록 모두에게는 어떤 시치미를 뗄 만한 장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 아버지가 구부러진 숟가락을 들어 겸연쩍게 콩나물국을 뜬다. ..
- 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요.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된다"고 썼더니 사랑하면 희생하고 인내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말하는 노력은 'try'에 가깝거든요. 가망이 없는데 한번 더 물어나보는 행위죠.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결과로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고등학교에서 이과 공부를 했고 천문학과를 지망하다가 영문과에 진학하셨습니다. 이과적 성향이 문장이나 세계관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다고 보세요?) - 계획하는 점, 입력하는 만큼 출력된다고 믿는 점이요. 원하던 대로 천문학과를 갔다면 원래 꿈꾼대로 인생이 진행된 거니까 거기서 주류가 되려고 노력했을 것 같아요. 어쨌든 경쟁은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진로가 중간에 삐끗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
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咸州詩抄) 4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
··· 끝내고 무대에서 퇴장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것이다. 1년 전에도 샐리 헤이스와 함께 이걸 본 적이 있는데, 샐리는 무대 의상이나 장식이 참으로 아름답기 짝이 없다고 계속 말했다. 나는 예수가 이런 호화찬란한 의상 따위를 본다면 아마 구토를 참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샐리는 나더러 신을 모독하는 무신론자라고 했다.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예수께서 진정 좋아할 사람은 그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북을 치는 단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내가 여덟 살 때부터 죽 보아왔는데, 부모와 함께 보러 갔을 때 나와 동생 앨리는 이 사람을 더 잘 보려고 자리를 옮기곤 했다. 그렇게 훌륭하게 북 치는 사람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한 곡에서 북 치는 기회란 단 두 번 밖에..
··· '자기 세계'라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몇 명 나는 알고 있는 셈이다. '자기 세계'라면 분명히 남의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성곽에서 대기는 연초록빛에 함뿍 물들어 아른대고 그 사이로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보는 것이지만 웬일인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세계'를 가졌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가 그 성곽에서도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 지하실에는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새없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모두 그들이 가진 귀한 재산처럼 생각된다. ···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한마디로 얼마나 기막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과정 속에는 번득이는 철편(鐵..
··· 이모는 가끔 답장을 보냈다. 다정하지도 사려 깊지도 않은 편지였다. 이모의 글씨체는 작고 성의 없고 형체가 허물어져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쪽 뺨을 책상에 대고 엎드려 쓰는지 글씨는 흐릿흐릿하게 이어지다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는 내 이야기로 편지를 채우지 못할 때는 섬에 관해 물었는데 편지를 읽는지 어쩌는지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너와 네 동생은 대체 몇 살이지, 편지는 대개 이렇게 시작했다. 너희는 언제 크지? 너무 길고 지루하네. 그리고 이모는 창밖의 사이프러스 잎이나 끓고 있는 홍차, 섬 곳곳에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해조류에 대해 두서없이 얘기하다가 편지를 끝내고는 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예사였고 엄마에게 이렇게 전해, 하다가 끝난다거나 'ㅅ, ㅐ, ode'처럼 ..
··· 나는 시골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 쪽으로 걸었다. 어쩌면 이 계절의 하늘은 이토록 무연히 맑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아픔은 어쩌면 이리도 생생할까. 아픔은 늙을 줄을 모른다. 아픔을 치유해 줄 무언가에 대한 기구가 그만큼 생생하고 질기기 때문일까. 이번 겨울에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비어 있는 들판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볼까. 며칠 전에 지구를 뜬 그녀의 별에 전파가 닿게끔 머리에는 긴 가지로 안테나도 꽂고······그러나 사람이 죽은 다음에 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최윤, 「회색 눈사람」 中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끄만 정차장에서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푸라트 · 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털어트리고,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었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청산도(靑山道)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 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 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 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