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쏟아지던 날들
반월 본문
··· 이모는 가끔 답장을 보냈다. 다정하지도 사려 깊지도 않은 편지였다. 이모의 글씨체는 작고 성의 없고 형체가 허물어져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쪽 뺨을 책상에 대고 엎드려 쓰는지 글씨는 흐릿흐릿하게 이어지다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는 내 이야기로 편지를 채우지 못할 때는 섬에 관해 물었는데 편지를 읽는지 어쩌는지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너와 네 동생은 대체 몇 살이지, 편지는 대개 이렇게 시작했다. 너희는 언제 크지? 너무 길고 지루하네. 그리고 이모는 창밖의 사이프러스 잎이나 끓고 있는 홍차, 섬 곳곳에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해조류에 대해 두서없이 얘기하다가 편지를 끝내고는 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예사였고 엄마에게 이렇게 전해, 하다가 끝난다거나 'ㅅ, ㅐ, ode'처럼 단어의 일부만 적다 말기도 했다. 아무래도 엄마를 염두에 둔 말이지 싶어 비밀로 했지만 이런 조언을 적기도 했다. 멍청한 여자들은 인생이 가엾어지는 것이란다. 그런 여자들은 깃털처럼 잠깐 떠올랐다가 이내 바닥으로 내려앉는 일들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남자들의 친절이나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는 열차 같은 것, 물방울처럼 허무한 구애의 말들 말이다. 물론 당부는 그렇게 차갑고 정확하게 적히다가도 어떤 허무감에 쫓기듯 맺음말 없이 끝나기도 했다.
- 김금희, 「반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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