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쏟아지던 날들
싫은 날 본문
뭘 해도 그냥 싫은 때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푹 빠져들었다.
주인공이 나와 동년배라서 금방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태어난 날은 아니지만) 기록된 생일이 나와 같아 괜한 의미 부여를 해가며 읽었다.
절반 정도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인생소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2장으로 넘어가자마자 확 김이 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서술방식이 쓰였다. (ex.너는 ~한다)
그 이후론 아름다운 문장을 봐도 작위적이라는 생각만 들었고
결국 나의 별점은 '보통' 수준을 넘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책을 불편하게 읽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외출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대충 읽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원래의 제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했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찜찜하기도 했으니.
도서관에 비치된 기기로 소독을 하긴 했으나 이불에 파묻혀서 읽기엔 신경이 쓰였다.
내 책이었다면 혹은 이 책을 거쳐간 사람들이 최소한의 청결도(?)를 지켰다는
보장이 있었다면 내 감상이 달라졌을까.
잠시 책을 덮고 외출을 다녀와 느긋한 마음으로 읽었으면 달라졌을까.
'내 취향'이라 생각한 것들이 예상을 빗나갈 때면 좀 슬프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다.
며칠간 눈여겨 보고 있던, 새로 문을 연 동네 카페에 다녀왔는데
들어서는 순간 또 김이 샜다.
분명 인테리어는 예쁘긴 하지만, 요즘 유행인지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에
의자인지 테이블인지 구분이 안 가는 낮은 테이블.
하는 수 없이 벽에 등이라도 기대려고 앉았는데 발을 뻗을 곳이 없네.
이래저래 자세를 고쳐가며 앉아 봤지만 아무래도 불편했다.
단골 카페로 삼으려고 간건데 그럴 일은 없겠다 싶었다.
또 컵홀더 없이 종이컵을 두 개 겹쳐서 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겠지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ㅋㅋㅋ
테이블 곳곳에 잡지가 무심한 듯 놓여있고 종이컵을 두 개 겹쳐서 주던데 이게 유행인가?)
배경음악은 내 취향이었지만 사장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손님 무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불쾌했다.
소음을 가리려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틀었지만 역부족.
게다가 라디오 게스트의 목소리와 말투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선배와 너무나 똑같아서
그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다시 책에 집중하려 하는데 東京를 토오꾜오라고 쓰인 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ㅋㅋ
실제 발음이야 그에 가깝겠지만 낯설어서일까. 왜 일케 거슬리지 ㅋㅋ
어제 읽은 책에선 국립공원을 굳이 코쿠리쯔교엔이라고 쓴게 거슬렸는데.
야에이죠(야영장), 텐보다이(전망대)로 화룡점정.
외국어를 발음나는 대로 쓰는 걸 좋아하지만 책에서 종종 이런 단어를 만나면 아직은 많이 낯설다.
싫은 게 너무 많아서 집으로 돌아가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읽은 소설에서 삶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글로 써보라고 하던 게 생각나서.
쓴다기보다는 받아적는 게 맞다고 했던가. 싸이월드 시절에 자주 하던.
카페를 나오며 생각해 보니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저녁은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싶어 집 근처 중국집에서 교동짬뽕과 탕수육을 포장해 왔다.
(별거 아니지만 저 가게에서 포장해 와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해서 기쁨ㅋㅋ)
몇번 매장에서 먹어봤을 때 늘 맛있었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사왔는데
집에 와서 포장을 뜯는 순간 기대 이상으로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소스 위에 놓인 신선한 야채와 꽃잎 모양의 당근!! 이 작은 손길이 이렇게 기분 좋게 해주다니.
탕수육을 한 입 먹는 순간 싫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리고 금방 행복해졌다.
갓 만든 따뜻한 음식의 위력인가!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도 없이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짬뽕도 물론이고!
아 어쩌면 나는 자세가 불편해서, 몸이 안 좋아서, 배가 고파서 그렇게 다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싫은 것만 적었으니 좋았던 것 하나 더.
며칠 전에 갔던 이케아 매장의 직원들이 친절해서 한참동안 기분이 좋았었다.
계산대의 직원은 노래라도 부르는 듯 흥겹게 일해 나도 기분이 좋아졌고
짐보관함 앞에서 낑낑대고 있던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직원은 천사 같았다 ㅋㅋㅋ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먼저 다가와서는
내가 겪고 있던 문제의 원인을 말해주고ㅋㅋ
뒤쪽에 더 큰 보관함이 있다고 알려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내가 그쪽으로 갈 때까지 문도 잡아주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정말 별거 아닌 일이지만 기계적인 과잉친절이 아니라
몸에 밴 듯한 자연스러운 친절함이 놀랍기까지 했다.
(나 너무 팍팍하게 살았나 보다 ㅋㅋ)
이름이라도 봤으면 친절직원 추천이라도 하고 싶은..
그옛날 모닝구무스메의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ㅋㅋ
(道行く人が親切だった うれしい 出來事が增えました
길을 가던 사람이 친절했어요 기쁜 일이 늘어났어요)
아 또 좋았던 일 하나 더
작년까지 구독하던 유투버가 어느날 갑자기 영상을 다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렸길래
이제 접었나 보다 하고 구독을 끊었었다.
가끔씩 생각나서 다시 찾아보려 해도 이름이 생각 안 나는 거다 ㅋㅋㅋㅋ
사람 이름인데 도무지 생각이 안나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 무심코 옛날 관심동영상 목록을 보다
다시 채널을 열었다는 걸 알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예전에 올린 컨텐츠는 삭제하고 새로운 것만 올리지만
다시 찾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다!
또 생각난 거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보는게 좋다. (특히 미국)
좋아하는 지역이 나오면 당연히 좋고! 실제로 존재하는 어딘가의 낯선 지명이 좋다.
오늘 읽은 소설에도 미국의 어느 지명이 나와 구글맵을 켜고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드라마나 영화도 물론!
런던, 파리 나오는 영화는 목록을 만들어서 클리어(?) 중이고
실제로 그 지역에서 촬영하지 않았더라도 배경 설정만으로 지명에 애착이 생김ㅋㅋ
조지아 애틀랜타-워킹데드, 뉴멕시코 앨버커키-브배,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오피스,
헬로 위스콘신!-70's show, 굿모닝 볼티모어-헤어스프레이 ㅋㅋㅋ
링컨셔 스탬포드-MMFD, 브리스톨-스킨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빅뱅이론, 콜로라도-커뮤니티
네브래스카-페니 고향ㅋㅋ 루이지애나-트루블러드
보스턴-굿윌헌팅, 일리노이-민걸즈, 샌프란시스코-프린세스다이어리 등등...
일드는 키사라즈 캣츠아이,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등
(이 드라마는 보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를 추억(?)이 있어
도쿄 갔을 때 이케부쿠로에 묵으며 있지도 않은 향수에 젖었다ㅋㅋ)
쓰다보니 문득 커뮤니티의 아벳 같다는 생각이ㅋㅋ
고등학교 때도 미국 영화를 보면 뚜벅이나 대중교통으로는 다닐 수 없는
넓은 땅과 그에 따른 생활양식(스쿨버스라든지ㅋㅋㅋ), 지역마다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 등등이
너무 흥미로웠고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심심할 때마다 구글어스로 간접여행ㅋㅋ
근데 땅덩어리도 너무 넓어서 특정지역을 가야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아 막상 여행으로는 아직 못 가보았네.
다음번에 미국여행을 간다면 LA가 첫번째이지 않을까! (라라랜드 덕분)
그외 샌프란시스코, 워싱턴DC(박물관!), 뉴욕, 시애틀 등등..
영화에서 많이 본 사막이나 숲길 끝없이 이어지는 일직선 도로 등등도 가보고 싶지만 언제쯤 가능할지!
세계테마기행을 보며 대리만족을 해야겠다..
싫어하는 걸로 시작해 좋아하는 걸로 끝내는
오늘의 의식의 흐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