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쏟아지던 날들
2018년 10월, 가을 부산 여행 1 본문
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이라면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깨닫게 된다는 점을 꼽고 싶다. 온전한 혼자는 아니었지만, 혼자 떠나 때로는 함께, 때로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또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왔던 부산 여행. 전부터 부산의 곳곳을 좋아했지만 이 여행을 계기로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좋아하던 곳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설연휴에 가만히 누워 있다 생각나서 올리는 포스팅.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있던 터라 주말마다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작년 가을. 토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내려가 하룻밤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토요일엔 학교 후배를 만나 자갈치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태종대에 다녀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맛있는 장어덮밥을 먹고 홀로 광안리의 밤바다를 구경했다. 아, 코인노래방도 갔었네ㅋㅋㅋ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 광안리 바다를 산책하고 부산시립미술관으로, 그리고 부산역 근처에서 회사 친구를 만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카페에 들렀다 순대국밥을 먹고 돌아왔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 자주 생각나는 10월의 부산!
두근두근, 열차를 기다리며
특별히 건강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허약하지도 않았었는데 10월 어느날 갑자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점점 심해지더니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서 결국 급히 병원에 들렀다. 이 정도로 아픈 건 처음이라 무슨 증상일까 온갖 상상을 하며 겁에 질려 있었는데 다행히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고, 온몸의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해 허리에 무리가 간 상태라고. 운동 부족ㅋㅋ 당장 나아질 수는 없고 치료하고 운동하며 코어근육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데, 부산 여행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은 포기하고 쉬었어야 했던 것 같지만, 날씨도 좋고 전부터 해둔 약속을 취소하기 싫어 조금은 무리해서 여행을 떠났다.
기차에서는 어떻게 하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부산역에 도착해서는 여느 때처럼 '광장'으로 나가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한바탕 공사중이라서 내가 기억하던 모습이랑 많이 달랐다. 잠깐 헤매다가 마중 나온 H를 만나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부산이지만 언젠가 걸어도 본 것 같은 익숙한 길을 지나며 새삼 반가웠다. 자갈치시장은 여러 번 가봤지만 시장 안에서 뭘 먹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부산토박이 H의 안내에 따라 관광객 기분을 만끽해 보기로. 해산물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 음식보다는 이 '체험' 자체가 즐거웠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찍다가 나중에는 귀찮아서 그냥 먹었다 ㅋㅋ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태종대로 향했다. 내가 부산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 매번 버스를 타고 이동하느라 늘 멀게만 느껴지던 길이었는데 H 차를 타고 가니 색달랐다. 여전히 길을 구불구불 험했지만,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는 영도 풍경이 신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 다누비열차는 여전히 줄이 길어 걸어올라가기로 했다. 빠르게 걷거나 뛰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는 건 견딜 만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이렇게 무리했나 싶지만. 전망대에 도착해서는 좀 쌀쌀했던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한 음료를 사서 잠시 쉬었던 것 같다. 이때 폰에 달았던 곰돌이 장식물(보통 키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열쇠고리는 아니고, 폰줄이라 하면 애니콜 시절 폰줄이 떠오르고.... 그냥 키링이라고 불러야겠다.)의 연결고리가 부실해서 자꾸 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한번 떨어졌다가, 저녁에 광안리 횡단보도에서 한번 떨어지고, 다음날 아침 모래사장에서도 떨어트렸지만 결국 찾았지.
좋아하는 길
그러고 보니 2009년에도, 2010년에도 똑같은 구도로 이 풍경을 찍은 적이 있다
구름이 신기했던 날
가슴 벅차오르는 풍경
이곳을 내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 좀 무서웠다.
구름 구름 구름
영도에 예쁜 카페가 몇 군데 있다길래 꼭 가보고 싶었는데 H 덕분에 들를 수 있었다. 교통편이 애매해서 버스 타고 가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새로운 길을 지나가며 기분이 좋았다.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해 운전하는 사람은 힘들었겠지만.. 뚜벅이는 그저 감사할 따름. 카페 '신기숲'에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말이라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그치만 카페 직원의 프로페셔널한 안내에 따라 무사히 주차할 수 있었다. 카페는 2층으로 되어있고 널찍하긴 했지만 거의 만석이었다. 주문하기 전에 자리를 확보하는 게 좋을 듯. 들어왔다가 마땅한 자리가 없어 나가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숲을 보며 앉을 수 있는 2층 야외자리가 명당인 듯 했지만 괜찮은 자리는 역시나 꽉 차 있었고, 1층에서 액자처럼 창밖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자리도 만석. 하는 수 없이 구석진 자리에 앉았지만 소파가 정말 편해서 카페에 있는 동안 허리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ㅋㅋㅋ
음료는 맛있지만 많이 비쌌다. 에스프레소 5,500원, 초코라떼 7,000원. 초코라떼 양도 너무 적었다. ㅠ_ㅠ
2층 야외좌석에서 볼 수 있는 풍경
화장실도 멋있었다. 음악도 흘러나오고..
카페에서 나와 다시 육지(?)로 향했다. 그동안 부산에서는 주로 버스나 전철을 타고 다녔고, 가끔 택시를 타더라도 주로 뒷자리에만 앉아서 바깥 풍경을 잘 내다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앞자리에 앉으니 새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아래 사진을 찍을 때쯤엔 라디오 클래식 채널을 틀어 놓았었는데 익숙한 듯 낯선 음악과 나른한 디제이의 목소리와 해질녁의 주홍빛 풍경이 어우러져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았다. 별 것 아니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중의 하나.
저녁식사는 남천동에 있는 '고옥'에서 장어덮밥을 먹기로 했다. 나고야식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로 유명하다는데, 나고야를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장어덮밥은 언제나 진리 아닙니까?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다행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H는 기본으로 시키고 내껀 특으로 시켰는데 나 참 새삼스레 먹보구나ㅋㅋㅋ 하루종일 고생한 H를 위해 저녁은 내가 사려고 했는데 끝끝내 H가 저녁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정말 고맙네. 다음번에는 내가 꼭 근사한 곳에서 한 턱 내야겠다.
맛있는 건 크-게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어느 아이돌 멤버가 생각나는 이름.. 잘 지내니 후루야?
저녁을 먹고 나오니 어둑어둑해졌다. 저녁에는 딱히 계획한 일정이 없었는데 일단은 숙소에 체크인하러 가기로. 숙소는 광안리에 있는 HOTEL1이라는 곳으로 예약했다. 방 형태는 여러가지인데 내가 예약한 곳은 캡슐형으로 방이라기보다는 걍 분리된 공간;;ㅋㅋ 수준이었지만 작년에 여러번의 캡슐호텔, 게스트하우스 다인실 투숙 경험으로 이젠 많이 익숙해 졌다. 가격도 적당하고 위치도 좋고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도 바깥으로 보이는 광안리 풍경이 멋질 것 같아 예약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대만족. H는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혼자만의 시간.
로비에서 반겨주는 인형들. 저 건너편은 카페 겸 휴식공간.
복도에 라커가 있고, 내가 묵은 객실(?)은 카드키를 찍고 한번 더 들어가야 했다
유럽에서 말도 안되는 게스트하우스를 몇 번 다녀와 보니 이런 구성은 감사할 정도!
내가 묵은 객실(?). 이 한 몸 뉘일 곳 있는 게 어디냐..
칸마다 작은 선풍기도 있고 조명 금고 옷걸이 등등 이것저것 편리하게 준비되어 있다. 창밖으로 광안대교와 광안리 바다가 보여 밤이나 낮이나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치만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날씨에 따라 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덥거나, 너무 건조하거나.. 방음은 당연히 안되고, 좁긴 하지만 하룻밤 묵기에는 불편하지 않았다. 침구도 정말 편해서 꿀잠 잤다 ㅠㅠㅠ
환상적인 뷰!
큰 짐은 라커에 보관하면 된다. 잠옷도 제공되고, 생수에 두유까지 줘서 기분 좋았음. 먹을 거 주는 사람=좋은 사람!
파우더룸.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이 없었다. 성수기만 아니면 크게 불편하지 않을 듯.
옥상에 마련된 공간. 여기서 내려다 보는 풍경도 정말 멋지다.
옥상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바다를 보러 내려갔다.
밖에서 본 숙소 모습. 중간에 있는 알록달록한 창문이 캡슐형 객실이다. 방마다 조명색깔을 바꿀 수 있음!
광안리 바다를 한참동안 걸어다녔다.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소리와 반짝이는 조명, 곳곳에서 팡팡 터지는 크고 작은 불꽃들.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모습에 조금 쓸쓸하기도 했지만 온전히 나의 감상에 집중할 수 있어 좋기도 했다. 이때 (여자)아이들의 LATATA와 한에 꽂혀서 무한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ㅋㅋㅋ 장범준 노래도 들었던 것 같고. 폰카메라로 이런저런 효과를 주며 재미있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나중에 생각나면 폰사진도 추가해야지.
사진으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밤 풍경 (은 스킬 부족 ㅠㅠ)
요란한 네온사인도 때로는 멋진 풍경이 된다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디. 홍대나 한강에서 너도 나도 무작정 판 벌이는 버스킹은 정말 싫어하는데 이쪽은 다들 실력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서 더 좋게 들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걸어다니다 좀 심심해서 코인노래방에 들러 꽤 오랫동안 노래를 불렀다. 현금이 모자라서 잔돈을 바꾸러 나왔는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많아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쉬웠지만 그쯤에서 끊은 게 차라리 잘된 것 같다. 숙소에 들렀다 다시 나왔던가. 길가에서 이런저런 소품을 파는 좌판이 있었는데 내가 갈 때쯤은 파하는 분위기라 잠깐 구경하고 말았다. 마음에 드는 귀걸이가 있었는데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사지 않았다.
분위기 좋은 공연이었는데 갑자기 신앙고백을..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ㅋ
아쉬운 밤은 야식으로 마무리. 샌드위치는 맛이 없었다.
'travelogue > 우리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년 10월, 부산 가을 여행 3 (0) | 2020.07.12 |
---|---|
2018년 10월, 가을 부산 여행 2 (0) | 2019.06.09 |
2018년 2월, 강릉 겨울 바다 여행 (0) | 2018.02.21 |
2010년 가을, 인천공항 여행 (0) | 2018.02.20 |
군산 여행 3.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옛 군산세관 (1) | 201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