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쏟아지던 날들
필름 속의 쿠바 1. 바라데로의 아침 본문
필름 속의 쿠바 1. 바라데로의 아침
긴장
바라데로에는 토요일 밤 늦게 도착했다.
입국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처리가 느려 답답해 하면서도
혹시라도 조그마한 트집이라도 잡힐까봐 잔뜩 긴장해있었다.
환전소에서도, 택시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경계심 가득한 얼굴이 방패가 되어주기라도 할 듯 눈에 힘을 주고는.. (기사님 죄송)
까사 호스트는 환한 얼굴로 반겨주었지만 또다른 걱정에 잠을 설쳤다.
괜히 온몸이 간지럽고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창밖의 작은 소리에도 긴장이 되어 몇번이나 잠에서 깼다.
무사히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데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침 바다로 가는 길.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해변이 있었다.
병원 건물이었는데 너무 예뻤다.
와!
시가지를 지나 해변에 들어선 순간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건 본 적이 없는 그런 에메랄드빛 바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바다보다도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끝없이 감탄하며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이 느낌을 잊어버릴까 아쉬웠다.
이상하게 자꾸만 '말괄량이 삐삐'가 생각났다.
어릴 적 상상하던 먼 이국의 바다.
곳곳에 쓰레기통도 있고, 선베드도 있고
여러 레저활동도 할 수 있다.
안전요원과 경찰도 곳곳에 있었다.
선베드는 인당 2CUC에 하루종일 이용할 수 있고,
스노클링은 인당 20CUC이었다.
이따가 다시 오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아침식사. 쿠바의 까사는 보통 5CUC 정도에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메뉴는 보통 토스트와 계란, 햄, 치즈, 망고, 바나나, 과일주스, 커피, 우유 정도.
쿠바 물가에 비하면 꽤 비싼 가격이지만
여행자로서는 정말 만족스러운 아침식사였다.
줄리엣의 까사는 다음날 예약이 가득 차 있어서
근처의 다른 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프랭크와 줄리엣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디아네의 까사로 옮겼다.
그리고 물놀이하러 바다로!
바라데로의 해변은 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꿈에서 본 듯한 곳이었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주인공의 기억 속에 꿈처럼 남아있는 백사장과 비치파라솔,
윈도우즈 배경화면에 깔아놓곤 했던 이국적인 풍광,
말괄량이 삐삐와 친구들이 동굴에서 다이빙을 하며 해적놀이를 하곤 했던 어느 바다...
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스노클링을 했다.
모터 없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배였다.
잔잔한 바다 위를 떠가던 순간은 쿠바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깊어졌다 얕아졌다 때때로 변하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의 색깔과,
찰랑찰랑하는 청량한 물소리,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을 오감으로 담아오고 싶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바라데로는 특히 가이드북에도 정보가 많이 없어서
그냥 돌아다니다 괜찮아 보이는 데로 가기로 했다.
'엘 토로'라는 곳에 갔다. 'The Bull'이라는 뜻.
스테이크를 먹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기대치가 한껏 낮아져있어서 그랬는지 쿠바에서 먹은 음식은 대부분 맛있었다.
쿠바 토종 콜라 'tukola'. 매번 이 뚜꼴라를 주문해서 먹었다.
당연히 코카콜라보다 맛이 없고,
콜라라기보다는 '콜라맛 젤리맛' 탄산음료처럼 느껴졌지만
계속 먹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다.
삐뚤빼뚤 완성도가 낮았지만
그래도 기념하기 위해 자석을 몇 개 사왔다.
둘째날 묵은 숙소. 1층은 호스트 가족 집이고
2층에 방이 2개 있다. 작은 방에 우리가 묵었고
조금 큰 방에는 벨기에에서 온 중년 부부가 묵었다.
점심 먹고 잠시 쉬다가 또 물놀이하러 갔던 것 같다.
선베드를 빌려 누워서 음료도 마시고 일기도 쓰고 눈도 붙였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담배연기가 독했지만 뭐 그것도 이 나라 문화의 일부라 생각하기로...
커다란 스피커에서 내내 쿵짝쿵짝 레게톤 리듬의 흥겨운 음악이 울려퍼졌다.
특히 한 곡이 반복적으로 들렸는데현지인이 아니라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따라부르고 있어서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Despacito.
여행 내내 수십번은 들은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들으면서 쓰는 중ㅋㅋㅋ
바다 반대방향으로 산책을 나갔다. 곳곳에는 이런 공중전화가.
다음날 트리니다드 까사 호스트에게 예약확인차 전화를 걸어보려고 했는데
CUP 동전이 없어서 결국 못 걸었다.
바라데로에서 찍은 것 중 제일 좋아하는 사진!
여기까지는 아그파필름.
그 다음 코닥으로 갈아 끼웠다.
반대쪽 바다까지 걸어갔는데
여긴 인도가 따로 없고 차들이 쌩쌩 달려서 좀 무서웠다.
이쪽에도 제트스키 같은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바라데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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